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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유방암 진료실의 풍경
진료과 유방클리닉 교수 박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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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방암 진료실의 풍경

40대 여성과 70대 여성이 진료실에 함께 들어왔다.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자 딸이 같이 온 것이다. 나는 유방암 치료 방법을 모녀에게 설명했다. 엄마의 유방암은 유방 일부분을 절제하고 나서 방사선 치료를 하면 완치될 수 있는 상태였다. 유방 전체를 잘라내는 유방 전(全) 절제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엄마 환자에게 "가슴을 모두 절제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얘야, 어찌하지?" 엄마는 딸의 얼굴을 살핀다. "엄마, 그냥 깨끗하게 다 절제해요. 부분 절제하면 수술 후에도 7주 동안 매일 방사선 치료 해야 한다잖아요." "그래도…."

엄마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고개만 끄덕일 뿐 엄마는 계속 말이 없다. 유방암에 걸린 딸이 엄마와 함께 들어올 때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40대 딸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친정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딸의 가슴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더 나아가 유방을 더 예쁘게 수술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유방암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나는 이런 상황을 진료실에서 종종 접한다. 딸은 엄마의 유방을 놓고 치료의 편의성을 먼저 생각하고, 엄마는 딸의 유방에 대해 보존 여부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엄마와 딸의 입장은 바뀌어야 한다. 젊은 여성일수록 여명(餘命) 기간이 길어 유방암 재발 우려가 크고, 고령 여성일수록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다. 따라서 노년층에서 유방을 일부 절제하고 보존하는 수술이 치료 효과가 높다. 그러나 가슴을 보전하려는 수술은 젊은 여성에서 더욱 많이 시행되고 있다.

유방을 절제한 후 환자들은 신체적·심리적 상실감을 느낀다. 사회활동에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웬만해서는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여름에 옷 입기가 난감하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남편이 가까이 오지 않으려 한다고도 여긴다. 그만큼 여자에게 유방은 여자다움을 상징하고 몸맵시를 내는 매우 중요한 신체 기관이다.

많은 유방암 환자를 보다 보면 "엄마도, 할머니도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오는 나이 든 엄마 환자 중에는 "나도 여잔데 부분절제술로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유방은 젖 이고, 딸의 것만 가슴이 아닌 것이다.

유방암 수술 후 정기검사하러 온 60대 초반 환자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선생님, 비싸도 괜찮으니까 좋은 검사 있으면 다 해주시고요. 몸에 좋은 약이나 비타민 있으면 다 처방해 주세요." 이 환자는 2년 전 유방 전절제술과 6개월의 항암제 치료를 받고 잘 나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먹을 것 안 먹고 좋은 옷 안 사고 뼈 빠지게 뒷바라지했더니 남편이란 X이 다른 여자와 놀아나네요. 이제는 날 위해 살려고 해요. 정말 화가 나요."

어떤 환자는 병원을 따라온 남편보다 먼저 진료실에 들어와 "선생님, 내 병이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거라고 남편에게 얘기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같아요. 그전하고 달라졌어요"라는 하소연도 진료실에서 적지 않게 환자들에게 듣는 말이다.

유방암 환자들은 여성성 상실감에 따른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겪곤 한다. 이혼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이런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심리상담을 한다. 이런 심리치료에는 가족의 협조가 중요하다. 특히 배우자의 태도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왠지 모르게 위축된 마음을 가진 상황에서 남편의 소홀한 태도나 외도는 암 충격보다 더 큰 삶의 회의를 느끼게 한다.

병원에 올 때마다 항상 남편과 사이좋게 함께 오는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표정이 밝다. 항상 동행하지는 못해도 남편이 가끔 시간 내서 아내의 상태를 직접 문의하는 환자들의 모습도 왠지 모르게 밝아 보인다. 표정이 밝으면 건강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고 면역력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50대 환자가 묻는다. "선생님, 일 다시 시작했어요. 괜찮죠?" "물론이죠." "저 좋아 보이지 않아요?"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예뻐지시고." "저요, 암 걸리기 전보다 운동도 많이 하고요, 건강 식이요법도 배우고요, 노래교실도 다녀요." 이 환자는 항상 멋진 옷차림으로 병원을 찾고, 구릿빛 피부에 환한 미소가 언제나 묻어 있다.

유방암 치료 2~3년 후 정기검사를 받는 환자 중에는 이처럼 활기가 넘치고 외모가 몰라보게 근사해진 분들이 많다. 그들은 암에 걸리기 전의 생활과 식이 습관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정기검사에서도 결과가 좋게 나온다. 내가 봐서는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건강하다. 암을 인생의 끝이 아닌 삶의 전환점으로 삼은 유방암 환자들은 힘이 넘쳐 보인다. 파이팅!

여성암센터 소장 박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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